천출(賤出)은 천한 출신을 뜻하는 단어다. 이제는 사극에서나 쓰일 법한 말이다. 어느날 누가 대뜸 당신에게 "천출이냐" 묻는다고 생각해보라. 화가 나기도 전에 어이가 없을 것 아닌가. 조선시대도 아니고 천출을 운운하다니. ― 그러나 기자는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게임이 천출 취급을 받고 있지 않은가 묻게 된다. 게임은 지금도 문화로 존중받기보다는 사회적 병리의 원흉으로 낙인찍히고 있다.
최근 국내 주요 게임사들이 모여있는 경기도 성남시에서 인터넷게임을 "4대 중독물질"로 지정해 "AI를 활용한 중독예방콘텐츠"를 만드는 공모전을 열었다. 성남시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는 오는 8월 17일까지 "중독폐해없는 건강한 성남"을 만들기 위해 인터넷게임을 "알코올, 약물, 도박"과 같은 4대 중독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그 중독을 예방하기 위한 콘텐츠를 만들어 홍보하는 행사를 기획했다. 지난 주말 게이머들의 분노가 퍼졌고, 공모전은 오늘(16일) 지원센터 홈페이지에서 조용히 자취를 감추었다.

이런 취급, 익숙하지 않은가?
"4대 중독"은 너무 오랜만이라서 그간 잘 지냈는지 문안인사라도 할 뻔했다. 2012년 정신의학계는 '중독포럼'을 발족하고 한국을 "중독 국가"로 규정했다. 포럼에서는 도박, 알콜, 마약과 더불어 인터넷(게임)을 "4대 중독"이라고 명명했고, 이듬해 정신과 의사 출신의 국회의원이 이른바 "4대 중독 예방법"을 발의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의 목적은 '국가중독관리위원회'를 설치하고 예방과 치료를 위한 인재를 양성하고, 각 지역마다 중독 관련해서 "치유"를 할 수 있는 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4대 중독 예방법은 통과되지 않았지만, 이들 그룹은 여전히 "디지털 디톡스"나 "스마트폰 중독"에 대한 공중보건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4대 중독"은 맥락이 있는 표현이다.
그렇지만 이 프레임은 점차 힘을 잃고 있다. WHO가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코드로 포함시킨 것은 사실이나, 이 결정의 과학적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들도 이어지고 있다. 게임이 실제 폭력을 유발한다는 실증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메타 연구가 발표됐고, 얼마전에는 5년간 1,625명을 연구했지만 게임 이용과 문제 행동 사이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데이터가 나왔다.
공교롭게도 성남이라는 장소까지 익숙하다.
때는 2019년, 자유한국당 윤종필 의원은 다른 곳도 아니라 성남시 판교 일원에 "게임중독은 질병!"이라는 내용이 쓰여있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출퇴근길에 현수막을 본 개발자들은 분노했고, 노동조합은 윤 전 의원을 비판하는 현수막을 내붙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윤 전 의원의 이름에는 문제의 현수막이 따라붙게 됐다. 그만큼 게임업계에 충격을 안긴 사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성남시는 게임 및 IT업계에서 거둬들이는 지방소득세로 재정자립도 1위를 기록 중인 지자체다. 성남시가 자체 발간 중인 소식지에 따르면, 2024년 성남시는 8,021억 원의 지방소득세를 징수했다. 경기도 최고 수준이다. 그래서 역대 성남시장들은 이른바 "게임 미래 먹거리"론을 펼치며 게임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시장 시절 "지스타를 성남에 유치하겠다"라며 백현동에 코엑스 버금가는 컨벤션 센터를 유치하겠다고 공언했다.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은수미 전 시장은 "성남을 게임의 메카로 만들겠다"며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했다. 그 결과물로 탄생한 것이 인디게임 대회 '인디크래프트'와 도심형 축제 'GXG'다. 신상진 현 시장도 인디크래프트를 찾아 "개발자의 열정을 지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말했다.

폭력적 행위에 대한 과학적 근거도 부족하다고 하고, 나라에 돈도 많이 벌어다준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또다시 "중독" 낙인을 찍었다.
이 출신성분을 고쳐보려고 대대적으로 "게임은 문화다" 캠페인을 전개했다. 입법활동의 결과로 문화예술진흥법에는 게임이 문화예술의 범위에 새로 추가됐다. 하지만 2025년에 다시금 "4대 중독"이 수면 위에 올라왔다. 인식의 전환은 이렇게나 더디다.
누군가는 이러한 자격지심을 느끼지 않을지도 모른다. 천출이든 하위문화(Subculture)든 재무제표만 잘 나오면 그만이라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태도만은 경계해야 한다.
셧다운제나 4대 중독법 문제에서 게이머들은 일관되게 게임 산업과 함께 목소리를 냈다. 만에 하나 이들이 돌아선다면 산업은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타격을 입게 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