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데믹, 해킹, 전쟁, 화재...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고난도의 게임 개발 기록이다.
19일 데브컴에서 GSC 게임 월드의 CEO 이브겐 흐리호로비치(Ievgen Grygorovych)와 총괄 프로듀서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리아 흐리호로비치(Mariia Grygorovych)가 <S.T.A.L.K.E.R. 2: 하트 오브 초르노빌>(이하 스토커 2)의 개발 과정을 공개했다.

스토커 시리즈는 슈팅 게임이면서도 히어로 판타지를 추구하지 않는 타입의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탄약과 의약품, 음식과 수면을 직접 챙겨야 하는 평범한 인간으로 설정된다.
배경은 실제 존재하는 키이우 인근 초르노빌 배제 구역이며, 승리 자체가 아닌 탐험과 생존의 과정에 초점이 맞춰진다.

개발진은 이를 ‘원정(Expedition)’ 구조로 정의했다. 안전 구역에서 출발해 목표를 정하고, 장비를 갖추고, 예기치 못한 사건에 부딪히고, 다시 귀환하는 루프가 반복된다. 이 긴장과 불확실성이 곧 스토커 시리즈의 정체성이다.
2편의 스토리 개발은 초기부터 난항을 겪었다. 초안은 열 번이나 거절되었고, 열한 번째 시도 끝에 지금의 서사가 확정됐다. 기술적 난관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도입된지 얼마 안 된 언리얼 엔진 5는 대규모 씬을 실시간으로 처리할 도구가 부족했다.
당시의 GSC는 자체 솔루션을 만들어야 했다. 또한 64㎢ 규모의 오픈 월드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하드웨어 제약이 치명적이었다. 출시 직전 Xbox 팀이 시스템을 최적화해 250MB의 메모리를 추가 확보해 주면서 안정적인 퍼포먼스를 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토커 2>의 여정은 이후로도 험난했다. 코로나19 판데믹으로 거의 전 직원이 원격으로 일해야 했다. 정체 불명의 해커들이 GSC의 데이터를 해킹하려고 공격한 적도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자 스튜디오는 팀의 생존을 챙겨야 했다. 이만큼 극적인 게임 개발을 이어간 개발팀이 이 세상에 존재할까? GSC는 전운이 감돌던 시기부터 사전에 버스와 무전기, 피난 경로를 준비했고, 침공 전날 새벽에는 긴급 메시지를 발송해 전 직원과 가족의 대피를 시작했다.
300명 중 200명, 그리고 가족 약 500명이 헝가리로 이동했다. 일부는 전선에서 떨어진 국내 서부 도시로, 일부는 체코 등 해외로 재배치됐다. 동료 중 상당수는 전선에 자원입대했다.
마리아는 “내러티브 디자이너, 엔지니어, QA까지 수많은 동료가 전선으로 나갔다”며, 이번 게임을 그들에게 바친다며 눈물을 훔쳤다. 발표에는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GSC 개발자와 그 주변인 중에서는 전선에서 유명을 달리한 이들이 있다.


체코 프라하 사무실에 불이 나서 전 직원이 대표하는 소동도 일어났지만, 게임 개발은 멈추지 않았다.
두 사람은 게임 개발을 이어갈 수 있었던 핵심 원동력으로 '익스트라바간자(Extravaganza)’라는 사내 문화를 꼽았다. 한 달에 하루, 누구나 원하는 기능을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는 시간이다.
여기서 탄생한 기타 연주 기능은 스토커 특유의 분위기를 강화하는 상징적인 요소가 됐다. 팬들이 실제로 게임 속 기타를 연주하는 영상을 공유하면서 개발팀 역시 큰 동기를 얻었다.

개발팀은 <스토커 2>를 단순한 엔터테인먼트에 그치지 않고, 전쟁 속 (러시아와 구별되는) 우크라이나만의 문화의 확산 통로로 삼고자 했다. (편집자 주: 러시아의 침공자들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사실상 하나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적지 않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우크라이나만의 독창적인 문화가 발전되어 러시아와 구별되는 독창적인 문화가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게임 속에는 키이우의 실제 모자이크가 구현됐고, 수백 건에 달하는 우크라이나 밴드 음악이 삽입됐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밴드들이 <스토커 2> 덕분에 국제적 무대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는 점은 팀이 강조한 성과 중 하나였다. 출시 전까지 불안은 컸다.
마리아는 “어제는 망했다고 생각하다가 오늘은 최고의 게임이라 느끼는 식으로 하루에도 열 번씩 마음이 바뀌었다”고 회상했다. 지금까지 700만 명 이상이 게임을 즐겼고, 스팀에서 올해의 게임, 최고의 스토리텔링, 최고의 분위기 후보에 올랐으며, PC 게이머가 선정한 ‘PC의 정신(Spirit of PC)’ 상을 수상했다.


이브헨 CEO는 “이번 발표는 완전한 회고가 아니다”라며 두 개의 DLC와 신규 업데이트가 준비 중임을 밝혔다. 마리아 디렉터는 “불가능하다고 했던 사람들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했다”며, 결국 중요한 것은 팀, 문화, 그리고 플레이어라고 강조했다.
두 사람은 <스토커 2> 제작기가 단순한 게임 성공담이 아니라, 극한의 위기 속에서도 창작의 의지를 꺾지 않은 ‘저항의 기록’임을 청중에게 전하며 강연을 마쳤다.
두 개발자의 눈물겨운 강연에 객석에서는 연신 박수가 쏟아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