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피드백 없이 멀티플레이 게임을 만드는 것은 '반드시' 실패하는 지름길이다"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개발자로 유명한 민 쾅 리(Mihn Quang Le, 닉네임 '구즈맨')이 유럽의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 데브컴 2025에서 25년간의 게임 업계에서의 여정을 회고하는 강연을 진행했다. 민 리는 모드 개발자에서 시작해, 밸브, 한국 그리고 펄어비스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회고하며 자신이 느낀 업계에 대한 소회와 게임 개발에 대한 깨달음을 이야기했다.
# <카운터 스트라이크>에서 밸브까지
알려진 대로, 민 리는 1998년 11월 <레인보우 식스>와 <퀘이크>를 결합한 게임 모드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구상하며 업계에 발을 들였다. 약 6개월간 프로토타입 버전을 개발한 후 맵 제작자의 도움을 받기 위해 사이트를 개설했는데, (또 다른 <카운터 스트라이크> 원로 개발자가 되는) '제시 클리피'에게서 "사이트 디자인은 별로지만 모드는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며 협력 제안을 받은 것.
이렇게 개발된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베타 시절부터 엄청난 인기를 자랑했다. 이에 자극받은 민 리는 동료 개발자들과 달마다 베타 버전을 출시했으며, 가능성을 눈여겨본 벤쿠버의 '바킹 독 스튜디오'라는 게임 회사의 권유를 받아 <글로벌 오퍼레이션>이라는 게임의 개발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날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 왔다. 21살의 민 리에게 '밸브'에서 메일이 온 것. 메일을 주고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밸브는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개발을 같이 진행하면 어떻겠냐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당시 젊은 나이였떤(어떻게 보면 어렸던) 민 리는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모드니까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는데, 이걸 왜 인수하겠다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 밸브의 제안을 수락했다.

바킹 독 스튜디오와는 아쉽게도 이별을 하게 됐다. <글로벌 오퍼레이션>은 결국 실패했는데, 민 리는 "게임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카운터 스트라이크>가 너무 강력했다. 당시 얻은 한 가지 교훈이 있다면, 먼저 앞서 나가서 가능성을 증명하고, 절대적인 위치를 점한 게임이 있다면, 그 게임을 따라잡으려는 그 어떤 시도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반대로, 밸브를 통해 스탠드얼론 출시된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크게 성공했다. 민 리는 <하프 라이프>를 하지 않지만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하프 라이프>는 최고의 게임이니까, 당시 게이머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줄만 알았다"고 했다.
민 리는 밸브의 수평적인 조직 문화가 인상적이었다고 회고했다. 밸브는 프로젝트마다 시니어 디자이너 (그리고 그 위에 '게이브 뉴웰')이 있을 뿐이고, 그 아래에서 모든 개발자들이 각각의 역할을 담당하며공동체적인 문화를 기반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개개인이 의견을 내기 쉬운 구조이기도 했다.

민 리는 자유로운 조직 문화 밑에서 기행을 일삼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회사에서 동료들과 에어소프트건을 가지고 놀다가 "누가 사무실에 BB탄을 뿌려 놓았냐"는 메일을 받고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집세가 아까워 사무실에서 노숙을 하다가 관리인에게 노숙자로 오해받거나, 오븐으로 식사를 데우다가 불을 낼 뻔하고 사내 부엌에 출입을 금지당하거나, 출입을 금지당해 놓고도 피자를 데우다가 치즈가 오븐에 제대로 눌어붙어 이성을 잃은 직장 상사에게 "다시 부엌에 출입하면 해고하겠다"는 이야기까지 들어 봤다고 언급했다.
이처럼 밸브는 자유롭고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자랑하는 집단이었다. 다만, 민 리는 밸브의 이러한 문화는 스팀을 기반으로 한 막대한 자본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며, 다른 회사가 쉽게 모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이상적인 개발 환경에 가까웠다고 회고했다.
# 택티컬 인터벤션과 처참한 실패
2006년 민 리는 독립해 새로운 게임을 만들고자 밸브를 떠났다. 당시 개발하던 게임은 <택티컬 인터벤션>이었는데, 본래는 홀로 개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홀로 2년을 개발하고 나서야 1인 개발은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점을 깨달았고, 동료를 통해 한국 회사를 소개받았다. 그 회사가 바로 한국의 마케팅 회사 '픽스코리아'였다.
픽스코리아에서의 경험은 즐거운 추억도 있었으나 고난의 연속에 가까웠다. 초기에는 픽스코리아의 약속대로 넥슨, 엔씨소프트, 스마일게이트, 넷마블, 텐센트, 퍼펙트 월드 등 다양한 대형 개발사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퍼블리싱 계약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2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고, 회사를 떠나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으나 이미 5명의 개발자와 오랜 시간 일을 한 상황이었다. 최저시급보다 돈을 받지 못하고 있음에도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개발자와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 하나로 찾아와 게임을 개발하던 사람들이었다.
사업가였던 대표의 제안으로 온갖 경험을 하기도 했다. 투자를 받기 위해서 투자자들이 오는 날, 가족이나 친척을 초청하고 같이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해 직원이 많아 보이도록 하거나, 픽스코리아는 게임 개발사가 아닌 마케팅 회사였던 만큼 몇몇 캐릭터 IP의 행사를 주관하기도 했는데 직접 나가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민 리는 어떤 행사에서는 인형탈 아르바이트가 연락이 끊겨, 자신이 직접 <마시마로> 탈을 쓰고 아이들과 놀아 준 적이 있다고 회고했다. 회사가 <앵그리 버드>와 관련한 오프라인 행사를 기획하다가 어마어마한 IP 사용비를 보고 계획을 취소한 적도 있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7년 만에 출시된 <택티컬 인터벤션>은 처참히 실패했다. 부족한 점 투성이에 버그까지 많았다. 민 리는 두 가지 핵심을 뼈져리게 깨달았다. 외부 플레이 테스트 없이 폐쇄된 환경에서 멀티플레이 게임을 개발하는 것은 '실패로 가는 확실한 지름길'이라는 것 그리고 비즈니스 파트너와 협력하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출구 전략'을 포함한 조항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발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다. <택티컬 인터벤션>의 개발자는 다섯 명이었지만, 개발에 관여하는 (그리고 게임을 모르는) 프로젝트 매니저가 네 명 그 위로 시니어 매니저가 3명이 있는 구조였다. 개발이 제대로 될 턱이 없었다. 격주마다 회의에 참여해 (개발을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개발 진척도가 어떠한지에 대한 설명을 해야만 했기도 했다.

이후 큰 상실감을 겪어 게임 개발을 그만둘 생각까지 했으나, 게리 뉴먼의 제안으로 <러스트>의 개발사 페이스펀치 스튜디오에 합류했다. 이전에는 민 리가 페이스펀치 스튜디오의 대표 '게리 뉴먼'에게 작업을 의뢰했지만, 이제는 작업을 의뢰받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도 민 리는 페이스펀치 스튜디오에서 근무하며 <러스트>는 절대 실패할 수 없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페이스펀치 스튜디오는 당시에는 작은 규모였기에 개발자 위에 프로젝트 매니저가 있고, 그 위에 CEO인 게리 뉴먼이 자리하는 구조였다. 민 리는 게리 뉴먼이 대표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음에도 때로는 코드를 직접 짜줄 수 있을 정도로 게임과 실무에 정통한 것이 인상 깊었다며, 대부분의 구성원이 게리 뉴먼을 신뢰하고 잘 따랐다고 언급했다.
다만, 페이스펀치 스튜디오는 당시 대부분의 구성원이 여러 국가에서 원격으로 일하고 있기에 2명 이상의 협업이 필요한 일은 진행하기 상당히 어려웠다며, 각자가 독립적으로 주어진 일을 잘 완수해야 하는 구조였었다고 언급했다.
그럼에도 <러스트>는 독특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상급자의 결정을 신뢰하며 끝없이 개발에 매진하며 콘텐츠를 추가할 수 있는 개발자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년마다 동시 접속자 신고점을 기록하며 스팀에서 최고의 성과를 거둔 소규모 개발사의 게임 중 하나로 남았다.

이후 민 리는 2018년 한국의 펄어비스에 합류했다. 아파트와 차까지 제공할 정도로 제안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민 리는 펄어비스의 경험은 매우 좋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AAA 게임을 개발하는 대기업인 만큼 조직 구조가 탄탄했으며, 프로젝트 매니저들이 모두 개발 경험이 있었기에 업무 진행 및 소통이 상당히 원활했다.
민 리는 펄어비스에서 <플랜 8>의 개발에 참여했다. 민 리는 "회사의 전문성 덕분에 그래픽은 제가 개발했던 게임 중 가장 좋았고, 슈팅의 재미도 있었다"고 언급했다. 다만, 민 리는 <플랜 8>의 출시를 보지 못하고 2022년 펄어비스를 떠났다. 가족과 살던 곳이 그리워 캐나다로 돌아간다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현재 민 리는 12명의 개발자들과 함께 4인 협동 게임 <알파 리스폰스>를 개발하고 있다. 특수부대가 되어 범죄자를 제압한다는, 어떻게 보면 흔한 콘셉트지만 맵의 규모가 상당히 크고, 거대한 맵 속에서 차를 타고 이동하며 다양하고 역동적인 상황을 마주하는 것을 차별점으로 삼은 게임이다. AI 기능이 중요한 만큼 최근에는 이 점에 집중해 개발되고 있다.
<알파 리스폰스>를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교훈을 얻었다. 얼리 액세스를 하면 퍼블리셔를 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알파 리스폰스>는 얼리 액세스 단계라는 이유로 여러 퍼블리셔에게 거절당했다. 민 리는 "퍼블리셔를 찾고 있다면 얼리 액세스는 좋은 선택이 아니다"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민 리는 자신의 경험으로 얻은 교훈을 공유했다.
- 타겟하는 고객을 명확히 파악하고 정의하라
- 타겟 고객층에 맞는 인플루언서와 협업하라 (광범위한 시청자층을 가진 대형 인플루언서는 피하라)
- 게임이 타겟 고객에게 어필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전까지는 투자금을 유치하지 않는 것이 좋다. 투자자는 '설득력 있는 지표'를 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