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피아의 뿌리를 찾아서
범죄 조직을 소재로 한 콘텐츠는 언제나 큰 관심을 끈다. 불법과 폭력이 난무하는 금단의 세계, 법보다 자신들의 질서를 앞세워 살아가는 조직의 이야기는 기자 같은 범부들에게 로망을 심어주곤 한다. 세련된 수트를 빼입고 '패밀리 비즈니스'를 위해 목숨을 던지는 조직원들의 모습은 모종의 희열을 전달한다.
헐리우드는 이탈리아로부터 출발한 범죄 조직 마피아를 성공적으로 낭만화했다. <대부>, <원스 오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좋은 친구들>, <갱스 오브 뉴욕> 등등 기라성 같은 작품들이 줄지어 탄생했고, 언급한 작품 모두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영화들은 실제 역사의 마피아에서 어느 정도 영감을 받아왔다. 행정력이 미약했던 시칠리아 섬에서 지역을 자경하던 이들은 마피아로 거듭났고, '보호비'를 걷으면서 중앙 정부와 공권력에 맞서 '비밀 사업'을 벌였다.
게임업계도 영화의 영감을 받아 마피아물을 여럿 만들었다. 영화적 연출과 시대 고증을 무기로 한 <마피아> 시리즈, 원작 라이선스를 바탕으로 조직 경영 요소를 강조한 <대부>(게임) 시리즈, 4X 전략 시뮬레이션의 형태로 미국 금주법 시대의 마피아를 그려낸 <엠파이어 오브 신>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락스타게임즈가 만든 거의 모든 게임 또한 헐리우드 범죄조직물에서 적잖은 영감을 받았다. 요컨대 우리는 <스카페이스>를 빼고 <GTA 바이스 시티>를 설명할 수 없다. 토미 버세티가 자신의 맨션에 쳐들어온 상대 갱스터를 상대하는 <바이스 시티>의 마지막 미션은 <스카페이스>의 마지막 장면을 오마주했다.

각설하고, (<고모라> 같은 특이 케이스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마피아물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이들이 어떻게 성장했고, 조직의 DNA를 미국으로 이식시켰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흔치 않다. <대부 2>에서도 비토 콜리오네는 9살 나이에 쫓기듯 뉴욕으로 이주한다.
바로 그런 점에서 <마피아: 올드 컨트리>는 게이머로 하여금 '마피아의 뿌리를 찾아서' 같은 느낌을 줄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마피아 소재가 매력적이라는 것은 현대 미디어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작 이들이 어디서 어떻게 출발했는지를 말하는 콘텐츠는 비교적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스튜디오 '행거13'이 만들고 2K가 유통하는 <마피아: 올드 컨트리>는 1900년대 초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내러티브 어드벤처 게임이다.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광산 노예로 팔려간 주인공 엔조 파바라가 '돈 토리시' 패밀리에 합류해 마피아 세계에서 성장한 과정을 그리고 있다.
기대 속에서 플레이한 <마피아: 올드 컨트리>는 마피아물에 고전 연애 비극을 잘 섞은 서사를 보여주었으며, 20세기 시칠리아의 모습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하지만 게임플레이 측면에서는 진일보하지 못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명징한 클리셰로 직조한...
게임 속 토리시 패밀리는 1900년대 시칠리아의 발레 도라타 계곡을 근거지로 한 마피아 조직이다.
작중 설명을 종합하면, 토리시 패밀리는 폰타넬라 남작 가문의 봉토를 관리하며 와인 사업과 '구역 관리'를 주요 비즈니스 모델 삼고 있다. 토리시 패밀리는 유황 광산 관리를 주로 하는 스파다로 패밀리를 경쟁 관계로, 참치 공장 운영과 해운 밀수를 주로 하는 갈란테 패밀리를 우호 관계로 두고 있다.
주인공 엔조는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스파다로 패밀리의 유황 광산 잡역부로 끌려간 신세다. 고작 100리라에 팔려린 그는 매일 고된 노역을 하다가 화산 폭발과 가스 누출 사고로 절친을 잃는다. 게임은 마피아 조직원이 아니라 노예 신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친구의 죽음에 항의했지만, 무시당한 그는 스파다로를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여기게 되고, 결국 도망친다. 스파다로에게 쫓기던 그는 토리시 패밀리의 보스 돈 토리시의 도움을 얻어 자유인이 되고, 이어 토리시 패밀리의 심부름꾼으로 생활하며 여러 일을 돕는다.
엔조는 우여곡절 끝에 마피아의 정식 단원으로 거듭났지만, 토리시와 스파다로의 갈등은 악화 일로로 치닫는다. 서로의 조직원을 암살하고 중재자 역할을 자처한 갈란테 패밀리에서도 사고가 발생하면서 영역 분쟁이 해소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이 가운데 엔조는 돈 토리시의 딸 이사벨라와 금지된 사랑에 빠진다. 결국 이사벨라의 뱃속에 새 생명이 잉태되기에 이르고, 엔조는 조직에서의 성공과 새로운 가족 사이에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을 조직의 올드비 티노와 돈 토리시의 조카이자 엔조의 파트너인 체사레는 불안한 듯 지켜보고 있다.
<마피아: 올드 컨트리>는 비교적 고전적인 주제를 소재로 삼고 있다. A 그룹에서 고생한 주인공이 B 그룹에서 성장해 A를 처단한다는 복수극, 서로 다른 배경의 두 남녀가 허락되지 않은 사랑을 나눈다는 연애 비극, 조직의 영달과 개인의 삶 속에서 번민하는 범죄 느와르, 20세기 초반을 다루는 시대극의 클리셰들이 적절하게 범벅된 인상이다.


유황 광산에서 노역을 하던 때나, 이사벨라와 함께 도망칠 마음을 품었을 때나 주인공 엔조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꾼다. 시리즈의 역사를 아는 팬이라면, 아이러니하게도 엔조가 그렇게 가고 싶던 엠파이어 베이(뉴욕) 또한 마피아들이 판을 치는 아수라장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엔조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지 못하고, 이사벨라와 그의 2세가 대신 이룬 아메리칸 드림 또한 만만치 않을 터.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환상과 회한 또한 여러 미디어에서 다룬 '클리셰' 범주에 있다 할 것이다. ― 그리고 이러한 클리셰들이 잘 섞여 안전한 재미를 준다. 이를 뒤집으면, 특별한 반전이나 대단한 내러티브 없는 게임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과잉 해석을 해보자면, 이사벨라가 혼자 연락선을 타고 도착한 1907년의 미국은 대규모 뱅크런 사태가 발생하며 금융위기가 터졌다. 수많은 은행과 증권사들이 파산했고 이 일로 뉴욕에는 실업자들이 양산됐다. 이사벨라는 자신을 지켜주는 '패밀리'와 무적의 주인공 엔조의 도움 없이 낯선 곳에서 살아남아야 할 것이다.



영화 같은 게임
<마피아: 올드 컨트리>는 <데스 스트랜딩 2> 만큼이나 영화적이다.
언리얼 엔진 5로 빚어낸 시칠리아의 풍광은 감탄스럽다. 빛과 어둠 등 광원과 음영 연출 또한 독보적이었다. 체감상 컷씬이 이동과 전투 같은 게임플레이보다 더 많았는데 그 연출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처럼 다가왔다.
지중해 민속 선율이 가미된 영화음악풍 BGM은 몰입을 돕는다. 12시간 안팎의 게임의 절반 넘는 부분을 컷씬이 차지하므로 플레이어는 사실상 10시간짜리 영화를 보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성우들의 시칠리아어 연기도 단연 일품.


그간 좀처럼 게임화되지 않던 시공간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그 시절의 세계를 추체험한다는 재미 또한 상당했다. 핸드 크랭크를 돌려 시동을 걸고 120년 전 자동차가 내는 100km/h의 속도로 흙먼지를 날리며 시칠리아 해안가를 질주하거나, 시내에 펼쳐진 시장의 모습을 구경하거나, 성당에서 성자의 축일을 맞이하거나, 100년 전 경찰들이랑 총격전을 벌이는 것들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재미 요소의 분량은 에스프레소 잔처럼 작아서 감질이 난다. 게임은 전편의 비판을 수용한 듯 '닫힌 오픈월드'를 채택하고 있다. 어디로든 탐험할 수 있지만, 선형 구조의 미션의 수행이 우선이기 때문에 일단은 닫혀있다. 탐험은 (버프가 되는) 부적이나 신문, 편지 같은 아이템을 모을 때에만 유용하다.
구역의 관리비 수금이나 노동자의 파업 저지 행동 같은 미션 또한 엔조가 마피아 패밀리의 일원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로 거쳐 지나간다. 게임이 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라면, 현실에서는 저질렀다가는 큰일 나는 나쁜 일을 다양한 경로로 즐긴다는 것인데, 그 점에서 이 게임은 지나치게 선형적이라서 아쉽다.
1920년대 뉴욕이 아니라 1900년대 시칠리아라서 아쉬움은 더 크다. 고전 영화처럼 긴 컷을 보는 것은 즐겁지만, 그 컷 바깥으로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게 만들었다.


한 발짝 나아가지 못한 플레이
<마피아: 올드 컨트리>는 뛰어난 서사와 연출을 선보이고 있지만, 게임플레이 측면에서는 별다른 진보를 보이지 못했다. 전작들에서 지적되었던 불필요한 운전 구간이 대부분 사라지고 T를 눌러 건너뛰기가 가능해진 점은 긍정적이지만, 이 또한 되는 구간이 있고, 안 되는 구간이 있어서 일관성이 부족하다.
잠입 - 총격전 - 단도 근접전으로 구성된 전투 플레이는 100% 내러티브를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잠입은 적들의 동선을 파악하고 암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실패할 때는 총격전으로 이어진다. 무조건 잠입으로 지나가야 하는 구간도 많지만, 어려운 편은 아니다.
총격전은 엄폐물을 활용하는 TPS 방식을 따르며, 무의미한 이동 구간이 줄어들면서 전투의 밀도는 높아졌지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정도는 아니다. 중거리/근거리 전투가 8할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기자는 거의 모든 전투에서 샷건을 사용했다. '부적'을 통한 업그레이드 기능도 있었지만, 게임 자체가 쉽기 때문에 부적 슬롯을 5개 전부 해금하지 않아도 클리어에는 무리가 없다.

단도를 사용한 근접전은 주로 보스전에서 등장하는데, 칼을 이용한 심리전과 QTE가 결합된다. 에필로그가 되는 챕터에서 플레이어는 엔조가 아니라 엔조의 연인 이사벨라로 게임플레이를 진행하게 되는데, 최종 보스에 해당하는 돈 토리시가 아니라 보스의 오른팔인 티노를 세 페이즈에 걸쳐 무찔러야 한다.
이러한 게임플레이는 다소 단조로운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스토리의 진행을 위한 도구로서만 존재할 뿐, 그 자체로 깊이 있는 재미를 주기에는 다소 부족하다. 플레이어는 엔딩 이후에 자유 주행 모드를 통해 시칠리아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지만, 서브 퀘스트라고는 하나도 없기 때문에 감상 이외의 '애프터'가 없다는 인상이다.

마피아의 뿌리를 찾은 영화, 게임적 재미는 아쉬움으로
<마피아: 올드 컨트리>는 마피아의 기원인 1900년대 초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조직의 성장과 몰락, 그리고 금지된 사랑을 다룬 게임이다. 뛰어난 영화적 연출은 플레이어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게임 본연의 재미인 플레이는 지나치게 단조로워 깊이 논할 요소가 적다. '마피아' 시리즈 초기작의 특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 정해진 레일 같은 선형적 구성으로 플레이어로 하여금 갇혀있다 느끼게 만드는 데다 클리어 이후의 콘텐츠도 모자랐다. 자유로운 게임플레이를 기대했던 게이머들에게 이 타이틀은 아쉽게 다가올 수 있다.
<마피아: 올드 컨트리>는 마피아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한 편의 고전 영화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전근대적인 시칠리아 마피아 모습은 미국 마피아들과 비슷한 듯 다르게 다가온다. 마피아의 역사와 그 이야기를 깊이 있게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는 최고의 경험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오픈월드에서의 자유도나 다양한 콘텐츠를 기대하는 게이머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작품이 될 수 있다.





- 안전하지만, 언제나 재미있는 이야기
- 게임 못해도 쉽게 깰 수 없음
- 완전히 고전적인 이야기
- 부족한 도전적 요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