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작업 환경이 가능해지고 다른 이의 성공적인 도전에 용기를 얻은 개발자들이 늘어난 덕에, 홀로 일하는 개발자가 이제 예전만큼 게임계의 희귀종으로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도구의 사용 난이도가 창작의 고뇌까지 줄여주는 건 아니지만, 워낙 손쉬운 툴로 유명한 RPG 메이커를 사용하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죠.
말레이시아의 개발자 마스(Mas)가 완성한 "아르티스 임팩트"도 1인 개발자가 만든 쯔꾸르 게임입니다. 그가 4년의 시간 동안 공 들인 이 게임은, 이제는 무뎌졌다고 생각했던 1인 개발 게임이라는 스펙에 오랜만에 솔깃해지는 게임이었습니다. /작성=깐(게임 리뷰어) 편집=김승주 기자
# 픽셀 아트와 만화적 연출의 조화
이 게임을 주목하게 만들었던 지점은 바로 아트입니다. 프레임 단위로 묘사한 역동적인 픽셀 그래픽에 만화책을 넘겨 보는 듯한 컷 연출의 조합은 신선하고 독창적입니다. 만화책 스타일의 연출 자체는 은근히 자주 접할 수 있지만, 그림체와 전체적인 조화가 정말 좋더라고요.
터치 하나하나가 선연하게 표현된 서정적인 스케치 스타일은 굉장히 개성 있으면서, 바탕이 되는 도트의 아기자기함과 조화로운 균형을 보여주는 거죠. 여기에 파스텔톤의 상큼한 색들을 수채화처럼 아련하고 그윽하게 담아내 오묘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덕분에 많은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지는데도 정적이라거나 따분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마을과 오밀조밀 이어진 자그마한 세계도 예쁜 것 하나를 놓칠세라 모든 장면, 모든 공간을 세세하게 살펴 보게 하고요.




# 냉철함과 천진난만함 사이의 '아카네'
때로는 강인하고 다부진 표정으로, 또 때로는 한없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장면을 압도하는 주인공 '아카네'의 매력도 한몫을 합니다. 기술에 의존하던 인류의 문명은 붕괴됐고 AI는 여전히 생존자들을 천천히 압박해오는 상황. 살아남은 이들 중에는 저항을 포기하지 않은 특수요원 집단 '리트'가 있으며, 푸른 눈과 머리칼의 아카네는 리트의 일원으로 언제나 열성적으로 임무를 수행합니다.
아카네의 매력 포인트는 차가워 보이는 외모 만큼이나 일을 할 땐 냉정하지만, 반전 매력이 있다는 겁니다. 이웃들에겐 바보 같을 정도로 다정하며, 늘 함께하는 학습형 AI '봇'에게는 장난꾸러기 소녀인 거죠. 시니컬한 봇과의 티키타카나 동료들과의 소란스러운 대화들은 시시콜콜하면서도 명랑한 소년만화 같은 느낌을 줍니다.


캐릭터들의 설정과 관계가 다소 식상하고 진부하기는 합니다. 게임 속 대화 중 농담의 비중이 8할이라고 해도 될 만큼 시도 때도 없이 유치하다 싶은 대화를 하고, 지나치게 이성 간의 관계를 개입시키는 경향이 있죠. 이런 이유로 개인적으로는 취향에 딱 맞는 온도의 유머는 아니었지만, 아카네의 비주얼에 호감이 가기도 하고 워낙 귀여운 구석이 많아 소소하게 대화를 감상하는 재미는 꾸준히 있었습니다.

# 일상의 디테일을 살린 생활 콘텐츠
<아르티스 임팩트>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밝고 잔잔하게 그려낸 모험담이기도 하지만,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기도 합니다. 목표를 향해 새로운 곳을 계속해서 찾아가기 보다는, 살고 있는 마을을 지키며 출장을 나가는 임무를 수행하는 방식 때문에 두드러지죠. 물론 이야기가 진행되며 더 먼 곳으로 배경이 확장되기는 하지만, 전체 지역이 크지 않기도 하고 일상적인 일의 비중이 높아 머무는 곳을 옮기는 게 아니라 생활 범위가 넓어지는 격입니다.
아카네는 자신의 집에서 숙면을 취하고, 요리도 하며, 동네 체육관에 등록해 훈련을 하기도 합니다. 이웃 노부부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든지, 은행 이자와 부동산을 관리해 수익을 얻기도 하고요. 타이쿤 게임 수준의 본격적인 플레이가 가능한 건 아닙니다. 대부분 캐릭터 정비와 성장을 위한 반복적인 상호작용과 특정 상황에 발생하는 특별 이벤트들로,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는 데 필수적인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이드 요소가 이 게임의 매력을 가장 많이 포함하고 있고 결말에 영향을 주는 '존경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실상 제일 핵심적인 콘텐츠이기도 합니다. 친절하게 명확한 지침을 주는 메인과 다르게 사이드 퀘스트들은 수수께끼 풀듯 이벤트를 찾아내야 해서 시간도 훨씬 많이 들고요.


예를 들어 동네 헬스장에서 훈련하면 스탯이 오르는 것.

# 고전의 감성만 있는 아쉬운 전투
전투는 턴제로 이루어집니다. 능력치와 무기 강화도 있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기도 하지만 사실상 이 게임의 전투는 고전적인 감성을 더하기 위한 이벤트에 가깝습니다.
몇 번의 핵심 전투는 스토리 연출의 일환인 별도의 애니메이션이 있고 전투가 시작될 때 화면이 전환되는 방식도 인상적이어서 이벤트로서의 기능은 훌륭했지만, 전투 자체의 재미는 너무 단조롭고 쉬워서 아쉬웠습니다. 단순한 시스템에 비하면 많다고 느껴질 정도의 장비들도 있지만, 구체적인 스탯과 효과의 차이가 미묘하기도 하고 전투 패턴이나 시스템에서 전략이 개입될 부분이 없어 세심하게 따져볼 이유가 없었고요.
적들은 심볼 인카운터 방식으로 만나게 되며 리젠 되지도 않아 귀찮지 않다는 건 정말 좋았지만 애초에 주요한 메인 보스전 외에는 전투가 거의 발생하지도 않아 크게 체감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머리 아프거나 반복적이지 않아 단점이라고만 보기엔 어렵지만 전투가 특징적인 장점이 되기엔 무리랄까요.



전투가 매우 단순하며 공략의 필요성이 없을 정도로 쉽기 때문.
# 총평 - 우울과 명랑의 교차점
<아르티스 임팩트>의 주제 의식과 테마가 폭주한 AI와 관련해 예상되는 흐름을 크게 벗어나진 못한다는 점에서 이야기가 강점인 게임은 아닙니다. 그나마도 피상적이고 시시한 대화로 중심 이야기의 변죽만 울릴 때가 많고요.
하지만 다중 엔딩으로 나눠둔 결말은 어느 쪽이든 책임감 있게 이야기를 마치며, 부족한 서사의 감동 대신 진한 캐릭터의 잔향을 남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적당히 우울하면서 넘치도록 명랑하게 표현한 산뜻한 감성이 적지 않은 부분을 보완하죠.
저에겐 홀리듯 마음을 뺏긴 첫인상만큼 강렬한 게임은 아니었지만, 맑은 화면에 처연하게 흩날리곤 하던 아카네의 머리칼과 치맛자락은 두고두고 생각날 것 같습니다.
- 만화책의 맛을 살린 독창적인 연출
- 반전 매력이 돋보이는 주인공
- 단순하지만 영양가 있는 사이드 콘텐츠
- 일관성 있고 끊임없는 유머
- 서사의 중심을 잡아주는 메인 이벤트의 부실함
- 유머가 지나치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음
김가은(깐) - 게임 리뷰어
폭 넓은 장르의 게임에서 다양한 경험을 찾고자 합니다. 새로운 게임을 찾는 분들에게 제 경험담이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과 영상을 남겨 오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