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이라는 매체의 모든 역사를 통틀어 <닌자 가이덴>(Ninja Gaiden) 시리즈만큼 오래도록 사랑을 받아온 플랫포머 게임을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특히 1988년 패미컴을 통해 출시된 시리즈의 첫 작품 닌자 용검전은 닌자의 이미지에 걸맞는 호쾌한 액션과 비장미 넘치는 배경 음악, 그리고 극악이라는 단어조차 완벽히 어울리지 않는 엄청나게 까다로운 난이도로 당시 많은 게이머들에게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닌자 가이덴의 주인공 류 하야부사는 닌자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급부상했으며, 이후에도 닌자를 주연 혹은 조연으로 내세운 수많은 닌자 게임에 크고 작은 영향력을 끼치기도 했다.
시대가 흐르면서 닌자 가이덴 시리즈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픽셀 그래픽의 런앤건 플랫포머 게임이었던 <닌자 가이덴> 시리즈는 3D 그래픽의 다양한 무기를 활용하는 액션 게임으로 탈태했다. 닌자 가이덴 시리즈의 험악한 난이도와 더불어 슈퍼 닌자라 불릴 만한 다양한 닌자 액션은 여전했지만, 개중에는 초창기 <닌자 가이덴>의 플랫포머를 그리워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 많은 이들의 그리움에 이제서야 부응하기라도 하듯 새로운 플랫포머 명가로 떠오른 스페인의 인디 게임 개발사 The Game Kitchen이 팔을 걷어 부치며 당당히 나섰다. 그리고 그렇게 <닌자 가이덴> 시리즈의 스핀오프 <닌자 가이덴 : 레이지바운드>(Ninja Gaiden : Ragebound)가 모습을 드러냈다. /작성=쿠타르크 필자(인디게임 블로거), 편집=김승주 기자
※ 본 리뷰는 어느 정도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 <블래스퍼머스> 개발진이 말아주는 <닌자 용검전>
<닌자 가이덴: 레이지바운드>는 악마들의 인간계 침략을 막고자 마계를 봉인하기 위해 험난한 여정에 나선 새로운 닌자 겐지의 여정을 담은 아케이드 스타일의 액션 플랫포머 게임이다. 본디 닌자 가이덴 시리즈는 코에이테크모(구 테크모)의 IP로 널리 알려져있으나, 본 작품은 <블래스퍼머스>(Blasphenous) 시리즈의 개발사 The Game Kitchen이 코에이테크모로부터 라이센스를 받아 개발에 참여했으며 레트로 풍 게임을 주로 개발하고 유통하는 Dotemu가 퍼블리싱을 맡았다.
<닌자 가이덴: 레이지바운드>의 레트로의 느낌을 완벽에 가깝게 살린 비주얼과 사운드는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할 만하다. <블래스퍼머스> 시리즈의 질감이 살짝 남아있는 특유의 픽셀 그래픽과 화면 인터페이스 구성은 <닌자 용검전> 시리즈에도 아주 잘 녹아들며, 거칠고 강렬하면서도 비장미마저 느껴지는 사운드트랙은 닌자 주인공과 전통과 현대가 미묘하게 공존하는 배경, 그리고 사악한 악마 군단 등의 소재를 전부 녹여내며 게임의 흥을 제대로 돋군다.
원조 닌자 용검전 시리즈와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어도 닌자 용검전 시리즈에 대한 향수나 애착이 있는 이들에게 큰 호응을 얻기에 한 치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오역과 어색한 번역이 난무하는 데다가 주요 고유명사조차 제대로 통일돼있지 않은 한국어 번역은 그야말로 눈뜨고 보기 힘들만큼 좋지 못하다. 당장 게임의 도입부에 나타나는 화면부터 오역이 가득한데, Prologue를 에필로그로 Legacy를 전설로 번역하는 등 누가 봐도 치명적인 오역이 아닐 수 없다. 그런가하면 게임의 중후반 쯤에 진입할 때 쯤이면 군데군데 오타가 버젓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런 끔찍한 오역으로 인해 게임에 대한 몰입이 흐트러질 지경인데, 아무래도 한국어 번역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거나 혹은 한국어 번역의 검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Prologue'를 '에필로그'라고 번역했다.
이번 <닌자 가이덴 : 레이지바운드>에는 오래도록 닌자 가이덴 시리즈의 얼굴 마담으로 활약했던 슈퍼 닌자 류 하야부사가 아니라 새로운 닌자 겐지가 새로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 대신 류 하야부사는 게임의 도입부와 결말 즈음에 잠시 얼굴을 비추긴 한다.) 주인공이 교체되긴 했지만 닌자 용검전 특유의 느낌은 여전히 잘 살아있다.
전통적인 배경에서 시작해 현대적인 배경을 거쳐 마침내 악마적인 배경으로 도달하는 전반적인 스토리의 흐름과 이에 따른 스테이지 구성, 불쑥불쑥 나타나는 적들을 무자비하게 도륙하며 목적지를 향해 달려 나가는 런앤건 방식의 게임 플레이, 벽 매달리기나 수리검 던지기 등의 다채로운 닌자 액션, 그리고 슈퍼 닌자라는 이명에 걸맞는 격렬하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등이 이를 제대로 증명한다.
원조 닌자 용검전 시리즈가 다소 어려운 난이도로 유명했던 만큼 <닌자 가이덴 : 레이지바운드> 또한 난이도가 제법 어려운 편에 속한다. 대체로 적들의 배치 간격이 짧고 등장 주기도 빠른 데다가 적에게 직접 부딪히기만 해도 데미지를 입어 대처가 좀 더 까다로우며, 가시나 투사체 같은 장애물도 끊임 없이 등장한다. 게다가 한 번 빠지기라도 하면 그대로 게임 오버 처리가 되버리는 절벽 같은 낙사 구간도 드물지 않게 나온다.
그 대신 체크 포인트의 등장 주기가 짧은 데다가 다른 플랫포머 게임에 익히 존재할 법한 목숨 개념이 따로 없어 도중에 게임 오버를 당하더라도 얼마든지 멀지 않은 지점에서 다시 게임을 이어나갈 수 있다. 닌자 용검전 특유의 어려운 난이도에 대한 직접적인 타협 대신 게임 오버에 대한 페널티를 대폭 줄여 충분히 도전적인 게임 진행을 유도한 모습이며, 이런 방식의 난이도 및 완급 조절은 충분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게임 오버로 인한 페널티를 줄이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게임이 모든 면에서 닌자 용검전과 같은 길을 걷는 것만은 아니고 기존의 닌자 용검전 시리즈와 차별화를 꾀하는 요소도 몇 가지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적이나 적의 투사체를 발판으로 삼아 추가 점프를 할 수 있는 '단두보'와 오라를 두른 채로 강력한 일격을 휘두르는 '혈상'이 그것이다.
특히 '혈상'에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잠시 기를 모아 체력을 조금 깎아 오라를 두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특정 색깔의 오라를 두른 적을 처치해 마치 뺏어오듯 오라를 두르는 방식이 더 많이 사용된다. 한 화면에 여러 적들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오라를 두른 적을 먼저 처치한 뒤 '혈상'으로 더 강한 적을 한 번에 처치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며, 이는 무작정 빠르게 돌파하기보다는 보다 정교한 플레이를 요구하는 시스템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흑거미 일족의 닌자 쿠모리와의 연계 플레이도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차크라 게이지를 소모해 쿠모리의 기술을 사용하는가 하면 겐지가 묶여있는 대신 쿠모리를 직접 조종해 막힌 길을 뚫을 수도 있다. 특히 쿠모리를 직접 조종할 때면 쿠모리만 활용할 수 있는 별도의 발판이나 오브젝트가 따로 등장해 같은 스테이지 안에서도 잠시나마 점프의 중요성이 커지는 양상으로 변화한다. 쿠모리의 존재가 스토리상에서도 꽤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하지만, 그걸 넘어 게임의 양상을 조금이나마 다양하게 만드는 데에도 나름 일조하는 셈이다.


# 보스전의 재미
보스전의 재미도 마땅히 언급하고 넘어갈 만한 가치가 있다. 항상 정해진 패턴 순서를 따르며 각 보스의 체력 상황에 따라 새로운 패턴이 추가되거나 특정 패턴이 강화되는, 다시 말해 철저히 패턴에 의존하는 보스전은 패턴의 전개 주기가 일정해 수 차례 도전하며 패턴을 파해하는 재미가 있다.
여기에 앞서 언급했던 '단두보'와 '혈상'이 더해지면서 보다 효과적으로 보스의 패턴에 대처하는 한편 강력한 일격을 가해 보스를 행동불능 상태에 빠트려 잠시나마 폭발적으로 데미지를 넣을 수 있는 순간이 생긴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대체로 패턴의 주기가 너무 빠르거나 느리지 않아 적당하고 펼쳐지는 패턴의 종류도 제법 다채로워 약간의 패턴 숙지와 피지컬을 발휘해야 하는 보스전은 충분히 흥미롭다 할 수 있다.
그 밖에 각 스테이지마다 수정 두개골이나 황금 벌레 같은 수집 요소가 존재하고, 수집 상황에 따라 구매할 수 있는 켄지와 쿠모리의 특수 무기나 비밀 스테이지 등의 추가 컨텐츠도 나름 깨알같이 준비돼있다. 여기에 한 차례 엔딩을 본 이후에는 진 엔딩을 볼 수 있는 어려움 난이도가 해금된다. 메인 스토리 이외에 이런저런 추가 컨텐츠를 갖춰둔 건 인상적이지만, 어려움 난이도의 경우 적의 등장 주기가 짧아진다던가 스테이지의 구조가 미묘하게 바뀌는 차이가 있긴 해도 게임 오버의 페널티가 적은 게임의 특성으로 인해 실제로 체감되는 난이도 변화는 그다지 크지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진 엔딩을 미끼로 2회차 플레이를 반쯤 강제하는 요소로 보일 여지도 다분하다.

# 시리즈의 근본에 충실한 게임
<닌자 가이덴 : 레이지바운드>는 닌자 가이덴 시리즈의 근본에 충실하면서도 류 하야부사가 아닌 새로운 주인공과 몇 가지 새로운 액션으로 또 다른 재미를 창출해낸 전도유망한 액션 플랫포머 게임이다.
닌자 액션의 박진감을 잘 살린 픽셀 그래픽 기반의 강렬한 연출과 닌자 가이덴 시리즈의 감성을 그대로 간직한 사운드트랙, '혈상'과 '단두보' 같은 닌자의 면모를 잘 살린 새로운 액션, 보스전의 절묘한 완급 조절 등, 액션 플랫포머 장르가 마땅히 갖춰야 할 대부분의 요소들을 아주 잘 갖춘 훌륭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블래스퍼머스 시리즈를 통해 플랫포머 장르에 대한 노하우가 충분히 쌓인 The Game Kitchen의 개발 역량이 돋보인다고도 볼 수 있을 듯하다.
다만 액션 플랫포머라는 장르 자체가 어느 정도 취향을 타는 데다가 원래부터 어려운 게임으로 유명했던 <닌자 용검전> 시리즈니만큼 이 게임 역시도 그리 만만한 게임은 아니라 어느 정도 진입 장벽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치명적인 오역 및 어색한 번역이 이러한 진입 장벽을 더욱 높일 여지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닌자 용검전> 시리즈에 대한 향수나 애착이 남아있는 이들이라면, 혹은 비단 <닌자 용검전> 시리즈가 아니라도 액션 플랫포머 장르를 선호하는 게이머들이라면 충분히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게임으로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 호쾌하고 강렬하며 정교하기까지 한 닌자 액션
- 게임 오버의 페널티를 대폭 줄인 시스템
- 절묘한 완급 조절이 돋보이는 패턴 중심의 보스전
- 진엔딩을 위해 반쯤 강제되는 2회차 플레이
- 플레이어의 피지컬에 따라 들쭉날쭉한 플레이 타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