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의 퍼스트 파티 타이틀 <동키콩 바난자>가 지난 17일 출시됐습니다. <마리오카트 월드>의 뒤를 잇는 두 번째 닌텐도 스위치 2 독점 타이틀로, 게임은 정식 출시 전부터 해외에서는 메타스코어 90점을 넘기며 ‘머스트 플레이’, 즉 반드시 플레이해야 할 작품에 이름을 올려 기대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에서 동키콩 프랜차이즈의 인지도는 해외에 미치지 못합니다. 실제로 시리즈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동키콩 컨트리>조차 국내에선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고, 2014년 <동키콩 컨트리 트로피컬 프리즈>를 마지막으로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기 때문입니다. 기자 역시 동키콩을 본가 시리즈가 아닌, 마리오 게임의 게스트 캐릭터로 처음 접했을 정도입니다.
이렇다 보니 “11년 만의 신작”, “<동키콩 64> 이후 26년 만의 3D 귀환” 같은 수식어도 국내 게이머들에게는 그 의미가 크게 와닿지 않습니다. 게임 곳곳에 녹아있는 전작의 오마주 역시 제대로 즐기기 어렵죠. 소위 말하는 ‘추억 보정’은 없거나 미미한 셈입니다.
그렇다면 <동키콩 바난자>는 이런 배경 지식 없이도 닌텐도 스위치 2를 구매하게 만들 ‘킬러 타이틀’이자, 시리즈의 완벽한 '입문작'이 될 수 있을까요? 지금부터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어릴 적 모래 놀이터의 추억을 되살리다
어린 시절에는 동네마다 바닥에 모래가 깔린 놀이터가 하나씩 있었습니다. 지칠 줄 모르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깔아둔 모래였겠지만, 기자를 포함한 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한 자리에 모여 최대한 아래까지 땅을 팠습니다. 가끔은 주변 수돗가에서 물을 길러와 모래를 굳혀 두꺼비집이나 모래성을 짓기도 했습니다. 이 단순한 행위가 얼마나 즐거웠는지는 모래밭을 뒹굴었던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아실 겁니다.
<동키콩 바난자>는 바로 이 원초적인 파괴와 재구성이 주는 재미에 집중한 작품입니다. 게임은 복잡한 튜토리얼이나 ‘지루하고 현학적인’ 설명 없이 플레이어를 곧바로 놀이의 한복판으로 던져 넣습니다. 앞을 가로막는 벽을 부수고, 지하 깊숙히 땅을 파고 들어가는 행위 자체가 게임의 핵심입니다.

물론 단순히 땅을 파는 것만으로는 이러한 재미를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손 끝에서 느껴지는 모래의 부드러운 촉감 역시 우리가 모래 놀이를 좋아했던 이유일 테니까요. <동키콩 바난자>는 시원한 파괴음과 사방으로 튀는 복셀 조각, 그리고 묵직한 컨트롤러 진동을 통해 파괴의 쾌감을 오감으로 생생하게 구현합니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부수며 나아가다 보면 크고 작은 금 조각과 보물상자, 화석, 그리고 소중한 ‘바나몬드’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마치 어릴적 놀이터 모래 속에서 우연히 동전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이처럼 오감으로 느껴지는 파괴의 재미와 그 끝에서 얻는 보상은 플레이어가 쉴 새 없이 땅을 뒤엎으며 숨겨진 보물을 찾으러 나아가게끔 만듭니다.
‘바난자’의 힘으로 여러 동물의 모습으로 변하는 변신 시스템은 이 같은 원초적인 재미를 한 층 더 높은 위치로 끌어올립니다. 고릴라로 변신해 단단한 지형도 가차없이 무너뜨리고, 새로 변신해 하늘을 날며, 코끼리로 변신해 코로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는 유치하고도 순수한 상상력이 게임을 풀어나가는 핵심 열쇠로 작용합니다. 변신을 통해 갈 수 없는 곳에 도달하고, 더 크고 많은 것들을 파괴할 때의 쾌감은 더할 나위 없이 큽니다.

사진이 이상한 것은 폴린의 노래에 심취하다가 그만…
다채로운 세계, 자유로운 탐험
이처럼 파괴를 통해 모험할 수 있는 <동키콩 바난자>의 세계는 무척이나 방대합니다. 금 채굴이 한창인 ‘잉곳 섬’을 시작으로 새하얀 빙하 세계와 우거진 밀림, 에메랄드빛 열대 해변, 햄버거를 테마로 한 놀이공원까지. 각 계층은 저마다의 뚜렷한 개성을 뽐내며, 테마에 따라 바뀌는 비주얼과 사운드는 탐험에 끊임없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월드마다 등장하는 새로운 물질들은 그 성질을 이용한 퍼즐로 작용하며 탐험에 깊이를 더합니다. 가령, 빙하 세계의 얼음을 뜯어내 용암에 던져 발판을 만들거나, 고무 지형을 힘껏 내리찍어 그 반발력으로 높이 뛰어오르는 식입니다. 또한 물질마다 경도가 다르게 설정되어, 흙이나 모래는 쉽게 부서지지만 단단한 콘크리트는 폭탄 같은 특정한 파괴 수단이나 강력한 변신 능력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작은 알갱이까지 또르르 굴러가는 것까지 구현한 사례는 드물 겁니다.

그런데 애초에 조리기에 세균이 있는 거 자체가 문제인데…
이러한 퍼즐 요소 덕분에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 역시 다채로워집니다.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이에 대한 단서를 직접 제시하는 대신, 인근 NPC와의 대화나 아이템 배치를 통해 넌지시 플레이어가 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합니다. 물론 개발자가 의도한 길을 따라가는 것도 가능하지만, 주어진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나만의 루트를 개척했을 때의 쾌감은 훨씬 큽니다. 정답을 맞혔을 때의 기쁨보다 나만의 답을 찾아냈을 때의 성취감이 이 게임의 탐험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자유로운 탐험은 자연스레 맵 곳곳에 숨겨진 수집 요소로 이어집니다. 대표적인 것이 도전형 콘텐츠인 '유적'입니다. 제한 시간 내에 적을 섬멸하거나 정교한 컨트롤이 필요한 플랫포머 구간을 돌파하는 등, 도전에 성공하면 바나몬드를 보상으로 얻습니다. 이렇게 모은 바나몬드는 스킬 포인트로 전환해 동키콩을 강화하거나 새로운 능력을 해금하는 데 사용됩니다. 탐험 중 발견하는 화석으로는 유용한 효과가 붙은 코스튬을 구매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게임이 이러한 수집 요소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최후반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콘텐츠 진행에 특정 자원이나 능력치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메인 스토리만 따라가도 엔딩을 보는 데 무리가 없도록 설계하되, 숨겨진 유적과 화석을 착실히 모은 플레이어에게는 한결 쾌적해진 탐험과 전투라는 확실한 보상을 제공하는 셈입니다.

단순함의 미학, 재해석으로 빛나다
약 20시간 정도의 장대한 모험의 중심에는 지극히 단순하고 전형적인 이야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각자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별의 중심’으로 향한다는 큰 줄기 아래, 동키콩은 산더미 같은 바나나를, 조력자 폴린은 고향으로의 복귀를, 라이벌 보이드콩은 막대한 부를 꿈꿉니다.
이처럼 단순 명쾌한 이야기는 플레이어가 복잡한 서사에 얽매이지 않고 게임의 핵심 재미에 곧바로 빠져들게 만드는 장치로 훌륭하게 기능합니다. 물론 이는 누구나 쉽게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다는 장점과, 다소 뻔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단점을 동시에 지닌 양날의 검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대사마저 대단히 로X단 스럽습니다…
하지만 <동키콩 바난자>는 이 뻔함 속에 시리즈의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영리한 ‘변주’를 더했습니다. 시리즈의 팬이라면 미소 지을 만한 오마주가 게임 곳곳에 녹아있습니다. 반가운 캐릭터가 얼굴을 비추고, 전작에서 보던 2D 플랫포머 구간이 등장하며, 심지어 캐릭터들의 사소한 동작 하나하나까지 전작의 모습을 섬세하게 담아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1981년작 <동키콩>에서 납치되던 히로인, 폴린을 주인공의 든든한 조력자로 재해석한 지점에 감탄했습니다. 기존 시리즈의 정글이 아닌 현대적인 모습의 섬과 지하 세계를 배경으로 삼은 것에 의아함을 품은 것도 잠시, 이야기 막바지에 터져 나오는 극적인 반전은 멈춰있던 시리즈가 나아갈 새로운 길을 명확히 제시합니다. 오랜 팬과 새로운 팬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그야말로 영리한 결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스위치 2 살까요?”
그렇다고 <동키콩 바난자>가 장점만 있는 완벽한 작품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게임 플레이에 지장을 줄 정도의 아쉬운 점도 있다는 점은 분명히 밝힙니다.
스위치 2의 향상된 그래픽 성능을 기반으로 각 세계의 다양한 테마를 유려하게 표현하고, 복셀을 활용해 지형 파괴를 사실적으로 구현한 점은 훌륭했습니다. 다만 부서진 조각이 한 번에 많이 튀는 상황에선 프레임 드롭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사실 비주얼 측면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어지러운 시점 전환이었습니다. 다른 3D 플랫포머 게임에 비해 유독 시점 이동이 잦아서 화면이 정신없이 움직입니다. 특히 지하로 파고들 때 카메라가 기묘한 각도로 고정되어 불편을 유발하는 상황도 종종 발생합니다. 3D 멀미를 느끼지 못했던 기자도 피로감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폴린의 한국어 음성 지원은 반가웠지만, 그 외 캐릭터들의 대사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점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폴린을 제외한 모든 캐릭터들의 언어가 제각각이라 대화 내용을 파악하려면 텍스트에 의존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텍스트 출력 배경은 투명한 데다, 한국어 폰트의 가독성마저 낮아 대사를 읽기가 불편합니다. 상호작용 판정도 빡빡해서 대화를 시도하려다 주먹을 날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하지만 이런 ‘옥에 티’가 게임의 가치를 훼손할 정도는 아닙니다. 앞서 거듭 강조했듯, 게임의 핵심은 파괴와 재구성에서 비롯되는 원초적인 재미이며, 닌텐도의 수많은 캐릭터 중 동키콩이야말로 여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캐릭터일 것입니다. 무려 11년 간 잠들어 있던 사자, 아니 고릴라를 깨운 것도 바로 이 때문이겠죠.
<동키콩 바난자>는 3D 플랫포머의 탐험 영역을 발밑 아래로까지 확장하고, 한때 마리오와 함께 닌텐도를 대표했던 동키콩 시리즈에 새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닌텐도의 과감한 ‘도전’입니다. 삽과 아닌 두 손으로 땅을 파고, 순진무구한 상상력을 실체화한 이들의 시도는,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가라앉아 있던 유년기의 동심을 수면 위로 끌어올릴만큼 강렬했습니다.
이제는 앞서 던진 질문에 답할 차례입니다. “<동키콩 바난자>를 위해 스위치 2를 사야할까요?” 기자는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고민은 배송만 늦출 뿐.”

- 자유로운 모험과 모험, 숨겨진 보물 찾기의 쾌감
- 시리즈의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영리한 변주
- 한국어 폰트의 부족한 가독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