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면 습하고 해 뜨면 살인적으로 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공포게임으로 피서를 하는 여름나기 패턴을 가진 사람들이 기자 말고도 꽤 많으리라 생각한다.
스팀 신작을 둘러보다가 이런 갈증을 채워줄 국산 공포게임을 만나게 됐다. VR, XR 게임을 주로 만드는 스코넥 엔터테인먼트의 <후즈 앳 더 도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스팀 리뷰 310개 중 90%가 긍정적으로, 리뷰 수와 평가 내용 모두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플레이타임도 2시간 안팎으로 길지도 않아 부담 없이 즐겨본 게임은 뭔가 생각이 많아지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전달하는 의미가 심오해서가 아니라 이 게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너무 극명하게 다른 평가를 하게 될 타입의 타이틀이었기 때문이다.
심장이 쫄깃할 정도로 무서웠느냐고 묻는다면 심장이 저릿하긴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이 게임에 엄지를 높게 들어주긴 어렵다고 느꼈다. 스트리머들이나 그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은 예상치 못한 전개와 깜짝 놀랄 요소들에 웃음을 터트리겠지만(스팀의 긍정적 리뷰도 대부분 이와 관련 되어 있다), 이 작품이 잘 만든 공포게임이냐고 묻는다면 의문이 남는다.
국내 기업이 공포 장르에서 기존에 잘 없던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점에선 박수를 쳐주고 싶지만, 미래에 더 나은 발전 방향성을 도모하기 위해, 어떤 점이 좋았고 어떤 점이 아쉬웠는지 적어보려 한다.
※ 경고: 게임 장르 특성상 무섭거나 기괴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미지가 많습니다.
# 약을 먹냐 문을 열어 주느냐
<후즈 앳 더 도어>는 기억을 잃은 채 건물에 갇힌 조현병 환자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플레이 방식은 매우 간단하다. 방 안에서 보는 기괴하고 이상한 현상이 “환각”인지 “아닌지” 구분만 하면 된다. 환각이라면 약을 먹고 치료를 해야 하고, 이상 현상이 없다고 판단했다면 현관을 계속해서 두드리는 방문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약을 넘겨 받으면 된다.
환각으로 마주치는 현상들 중 일부는 평상시의 방과 달라진 점을 찾는 틀린그림찾기 수준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매우 공포스럽거나 기괴한 연출이 등장한다. 점프 스케어(깜짝 놀래키는) 요소도 적잖게 있는 편인데, 이러한 환각을 ‘보고 인지해서’ 약을 잘 먹는다면 괜찮지만, 환각에 ‘접촉하면’ 그대로 그 날짜의 도전은 실패하게 된다. 환각이 없는데 약을 먹어도 실패다.
이렇게 환각인지 아닌지 구분하며, 약을 먹을 것이지 방문자에게 문을 열어줄 것인지 잘 선택하면 다음 날로 날짜가 옮겨가게 되고 그렇게 8일을 버티면 병세가 완화되고 이야기의 끝으로 향하게 된다. 실패하면 1일 차로 돌아가게 되니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자세히 말하지는 않겠지만, 게임은 하나의 이야기, 한 번의 8일 차 도전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과정이 3차례 반복되며 흩어진 이야기가 하나의 줄기로 모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찢어지고 부서진 ‘인형 조각’을 찾아야 이면의 진실을 알 수 있는 구조다.
이런 어둑한 방에서 시작해
환각이 있는지 없는지 여부를 찾으며 현관까지 가야 한다.
이 거실과 부엌, 화장실을 계속해서 체크하며
환각을 봤다면 약을 먹으면 되고
이상 현상이 없다고 판단된다면 문을 두드리는 방문자에게 약을 받으면 된다.
이상 현상이 매우 다양한 게 특징 중 하나다.
이런 심령 현상 외에도 커튼 색상이 바뀌어 있다거나 하는 등의 아주 사소한 변화도 있다.
현관문 바로 앞에 약통이 있기 때문에, 이 공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곳인 동시에 공포의 공간이 된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 무섭긴 한데 뭔가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만 봐도 느끼실 수 있겠지만, 게임에서 등장하는 여러 이상현상과 각종 연출들은 굉장히 기괴하다. 여타 공포게임에 비해 엄청 자극적이냐고 물어보신다면 그 정도까지 잔혹하거나 자극적이진 않은 편이라 답하겠지만, 점프 스케어 연출이 으레 그렇듯 마주치게 되면 저절로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게임의 기본 기획 자체는 잘 되어 있다고 느꼈다. ‘이상 현상’의 여부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진행을 하려면 좋든 싫든 방 문이나 TV, 냉장고, 선반, 현관의 눈구멍 등을 모두 확인해야 한다.(다행히 이런 상호작용 가능한 포인트는 제한된 편이다) 일부 이상 현상은 이런 상호작용 지점들 외에도 방의 특정 가구나 기물이 변해 있거나, 들리지 말아야 할 소리가 들리는 경우도 있으니 눈과 귀를 항상 열어두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자세히 들여다 보려 노력하던 중에 점프 스케어를 마주하면, 그 점프 스케어를 그냥 마주했을 때의 강도보다 몇 배는 높게 놀랄 수밖에 없다. 포켓몬식 표현을 인용하면 “효과가 뛰어난” 셈이다.
그러나 게임은 철저하게 B마이너스 급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 일단 등장하는 인물들이 기괴한 걸 넘어서 다소 우스꽝스러운 편이다. <파피 플레이 타임> 같은 게임만 생각해봐도 약간의 우스꽝스러움은 친근함으로도 다가올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론 도무지 정을 주기 어려운 디자인들이다.


이 게임에는 이상현상들이 꽤 다채롭게 있는 편이다. 점프 스케어의 수는 비율상 많진 않은 편이지만, 특정 연출들은 소위 꼬집어서 눈물 내는 ‘최루성’ 공포와 자극에 가깝다 느껴져 아쉬웠다. 조금 더 세련되게 이를 풀어내는 방법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이 우스꽝스러운 공포, 직관적이고 짧은 플레이세션, 부담스럽지 않은 판매 가격까지 모두 스트리밍 방송에는 매우 최적화되어 있다. 복잡한 조작 없이도 정말 다양한 놀람을 경험할 수는 있으니까 말이다. 이런 수요에 맞는 공급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가는 느슨함도 꽤 있다.
개발진도 스팀 페이지에서 <8번 출구>에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8번 출구>와 유사한 기본 골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미스터리, 공포게임 마니아의 시선으로 보면, 그 골조 위에 살을 붙인 영역들이 참신하게 다가오기 보다는, 성긴 조직의 누더기 옷을 덧입힌 느낌이었다. 그렇게 다가온 이유가 무엇일까.
인형 조각을 찾으며 이야기의 진실을 찾아가게 된다.
# 창작에서 피해야 할, 추구해야 할 영역
일상에서야 뉴스 기사가 정보를 얻기에 좋은 형태일지 모르겠으나, 내러티브를 전달하는 데 있어 ‘뉴스’를 활용하는 건 최대한 자제해야 할 연출 중 하나다. 육하원칙에 맞게 서술하면서 불필요하게 많은 정보를 주게 되기도 하고, 흥미진진함이나 재미를 추구하기도 어려워지며, 뉴스를 통해 전해 듣는 사건을 ‘플레이어’ 또는 ‘화자’와 멀리 있는 별개의 일이라 느끼기 쉽기 때문이다.
비슷하지만 다른 이야길 잠시 해보자면, 현실에서도 ‘방탈출’ 카페를 꽤 좋아하는 편인데 최근에 갔던 곳 중 하나가, 테마로 하고 있는 사건의 상당수를 뉴스 기사로 처리해 굉장히 맥빠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후즈 앳 더 도어>에서 뉴스를 활용하는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독하게 말하자면 시나리오 기획에 있어 부지런하지 못했던 것이다.
뉴스나 메모 등을 많이 활용했다. 많은 게임들이 이런 연출 소재를 활용하고 있지만 영리하게 잘 활용하기 참 어려운 소재 중 하나다.
B마이너스 급의 공포 영화들을 보고 있노라면, 스토리의 독창성이나 진지함이 그리 중요하지 않게 다가올 때도 있다. 사실 엉성해도 재밌으면 그만인 경우도 많다. 그 의견에도 매우 동의한다. 하지만 그건 긴장감과 아쉬움의 저울질에서 긴장감이 승리할 때의 이야기다.
공포게임에서 ‘사운드’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후즈 앳 더 도어>는 한국어 더빙도 지원하는 국산 게임이다. 한국어 음성 연기를 제공해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당연히 장려할 일이고, 시청각적 몰입이 분산되지 않게 하는 핵심적인 보조 도구이기도 하지만, <후즈 앳 더 도어>의 음성 연기는 너무나도 아쉬웠다. 그리 매끄럽지 않은 스크립트를 목소리’만’ 좋게 전해준 느낌이라 정말 이게 최선이었나 하는 생각이 내내 들었다.
생성형 AI를 활용해 만든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大AI 시대에 AI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니겠지만, AI 이미지 특유의 질감과 어색함을 없애기 위한 리터치 작업은 아직 필요한 시기라고 본다. 연출이 끝난 후에도 화면에서 사라지지 않는 자막 등 몇몇 버그를 차치하더라도, ‘완성도’ 측면에서 아쉬움이 적잖게 남았다.
공간이 그렇게 넓은 편도, 소품을 엄청나게 많이 배치해둔 편도 아닌데 굳이 AI 생성형 이미지의 질감을 그대로 남겨뒀어야 하나 싶다.
앞서 언급한 뉴스의 앵커 멘트도 마찬가지고, 이렇게 원거리에서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연출을 사용할 것이었다면 '음성 연기'에 공을 더 들였어야 한다.
국내 게임사들도 더 다양한 장르와 연출에 도전하는 것 같아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스팀에서도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으니 응원하고 싶은 마음도 굉장히 크다.
하지만, 도달하고자 하는 기준을 조금 더 높게 잡았으면 좋겠다. 개발 과정에서 돈을 더 투자하라거나 진지하고 복잡한 서사만 추구하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모든 장르에 통용되는 이야기지만, ‘공포’게임도 공포물이기 이전에 ‘게임’이기 때문에 그에 맞는 완성도가 꼭 따라와줘야 한다는 점을, 국내 게임씬이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도전에서의 경험을 양분 삼아, 스코넥이 다음에는 조금 더 신선한 작품으로도 찾아올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불필요하게 길지 않아서 좋다, 가격도 그만큼 부담 없다
- 스트리머가 가볍게 다루기엔 좋은 게임
- 내러티브와 관련된 여러 요소가 종합적으로 매우 아쉽다
- 사소한 버그, AI 이미지의 질감이 그대로 남아 있는 점 등이 눈에 밟힌다
- 캐릭터 디자인과 공포 연출에 대한 호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