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빌리빌리 월드(BW) 2025'가 단순한 동호회 모임을 넘어 아시아 최대 규모의 문화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은 이 행사는 역대 최대 규모인 24만 평방미터 전시 공간에서 40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으며 중국 Z세대 문화의 세계적 영향력을 입증했다.
빌리빌리(B站)가 주최한 이번 행사는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소설을 아우르는 ACGN(일본 서브컬처 문화가 중국으로 전파되면서 생겨난 용어로 Anime, Comic, Game, Novel을 뜻한다) 문화의 종합 전시장으로 기능했다. 상하이 국가컨벤션센터를 중심으로 펼쳐진 거대한 전시 공간에서는 IP 최초 공개부터 게임 체험, 코스프레 대회, 버추얼 유튜버 공연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특히 올해는 전시 규모와 참가자 수 모두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중국 2차원 문화의 성장세를 가늠케 했다.
행사의 성공은 중국 내 2차원 문화의 주류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과거 소수 마니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2차원 문화가 이제는 수십만 명이 참여하는 대중문화로 자리잡았다. 이는 중국 Z세대의 문화 소비 패턴 변화와 함께 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국경을 넘나드는 2차원 열풍
이번 BW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전례 없는 국제화다. 20여 개국에서 온 관람객들이 참가했으며, 여권으로 티켓을 구매한 해외 관람객 비율이 13%에 달했다. 일본, 한국 등 인접국뿐만 아니라 러시아,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전 세계 각지에서 2차원 팬들이 몰려들었다.
국제 참가자들의 다양성은 ACGN 문화의 글로벌 확산을 실감케 했다. 현장에서는 아랍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 등 다양한 언어가 오가며 진정한 국제 문화 축제의 면모를 보였다. 특히 중동과 남미 지역에서의 참가자 증가는 2차원 문화가 더 이상 동아시아에 국한된 현상이 아님을 보여줬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한 관람객이 굿즈를 구매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행사의 파급력은 소셜미디어에서도 확인됐다. BW 관련 화제가 일본 트위터 트렌드 6위에 오르는 등 해외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일본의 인기 만화 <문호 스트레이 독스>의 작가 아사기리 카프카는 참가 후 "모든 규모가 믿을 수 없을 정도"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는 일본 창작자들조차 중국 2차원 문화의 성장에 놀라움을 표하는 것으로, 한중일 문화 교류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준다.

게임업계 거물들의 집결
올해 BW는 게임업계의 주목받는 신작들의 각축장이기도 했다. <데스 스트랜딩 2>, <명말>, <아주르 프로밀리아>(蓝色星原:旅谣) 등 기대작들이 최초 체험 기회를 제공했으며, 코지마 히데오를 비롯해 궈웨이웨이, 호소이 준조, 하마지 아키라 등 유명 게임 제작자들이 직접 참석해 팬들과 만났다.
게임 개발자들의 참여는 BW가 단순한 소비 행사를 넘어 창작자와 팬이 만나는 플랫폼으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코지마 히데오의 참석은 특히 화제가 됐는데, 일본을 대표하는 게임 디렉터가 중국 행사에 참여한 것은 중국 게임 시장의 중요성을 인정받은 것으로 해석됐다. 각 게임사들은 체험 부스뿐만 아니라 개발자 토크쇼, 사인회 등 다양한 팬 서비스를 제공하며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했다.

한편 중국 내 게임업계도 이번 행사를 통해 자신들의 역량을 과시했다. <명말>과 <아주르 프로밀리아> 같은 중국산 게임들이 해외 팬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으며 중국 게임의 글로벌 경쟁력을 입증했다. 이는 과거 한국이나 일본 게임의 일방적 수입국이었던 중국이 이제는 콘텐츠 수출국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종업계의 2차원 마케팅 러시
전시 참가 기업들도 다양화됐다. 게임과 애니메이션 업계를 넘어 마카오 관광청, 화웨이, 상하오자 식품, 환타, 건설은행, 멘토스 등 이종 업계 기업들이 참여해 2차원 문화와의 접점을 모색했다. 이들은 IP 콜라보레이션, 코스프레어 마케팅 등을 통해 기존 마케팅 영역을 확장했다.
금융권의 참여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건설은행 같은 대형 금융기관이 2차원 문화를 활용한 마케팅에 나선 것은 이 문화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인정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은행들은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활용한 카드 디자인, 게임 내 결제 시스템 연동 등을 통해 젊은 층 고객 확보에 나섰다. 이는 2차원 문화가 더 이상 틈새 시장이 아닌 주류 소비층을 겨냥한 마케팅 도구로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관광업계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마카오 관광청은 애니메이션 성지순례 패키지를 출시하며 2차원 팬들을 겨냥한 관광 상품을 선보였다. 식음료 업계 역시 한정판 굿즈, 캐릭터 콜라보 상품 등을 통해 팬들의 구매욕구를 자극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2차원 문화가 단순한 취미 활동을 넘어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함을 입증한다.

상하이 경제에 미친 파급효과
BW의 성장은 지역 경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메이투안 여행 데이터에 따르면 행사 기간 중 전국에서 상하이로 향하는 항공권 주문이 50% 증가했고, 국가컨벤션센터 인근 호텔 예약량은 전년 대비 5배 가까이 급증했다. 관련 문화관광 주문도 35% 상승했다.
숙박업계의 호황은 BW가 단순한 당일 이벤트가 아닌 체류형 관광 상품으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많은 참가자들이 2-3일간 상하이에 머물며 전시 관람 외에도 쇼핑, 식도락, 관광 등 다양한 활동을 즐겼다. 이는 지역 서비스업 전반에 걸쳐 매출 증대 효과를 가져왔다.
특히 젊은 층이 선호하는 카페, 팝업스토어, 캐릭터 굿즈샵 등이 큰 수혜를 봤다. 교통 인프라에 미친 영향도 컸다. 상하이 지하철과 버스 시스템은 평소보다 20-30% 증가한 승객을 수용해야 했고, 택시와 차량 공유 서비스 이용량도 급증했다. 이에 따라 상하이시는 임시 셔틀버스 운영, 지하철 운행 시간 연장 등의 대응책을 마련했다. 이는 BW가 이제 도시 차원에서 대비해야 할 대형 이벤트로 자리잡았음을 의미한다.

문화 콘텐츠의 새로운 소비 패턴
특히 상하이 내 분회장으로 활용된 바이롄 ZX 쇼핑몰은 3일간 24만 명이 방문해 매출이 전년 대비 31% 증가하는 성과를 거뒀다. 빌리빌리는 상하이 시내 1000개 이상 매장과 연계한 할인 프로그램도 운영해 수십만 건의 혜택이 제공됐다.
이러한 연계 마케팅은 2차원 문화 소비의 새로운 패턴을 보여준다. 과거 온라인 중심이었던 2차원 문화 소비가 이제는 오프라인 체험과 결합되면서 더욱 다양하고 입체적인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테마 버스 운영, 쇼핑몰 전체의 2차원 테마 장식 등은 일상 공간을 2차원 세계로 변화시키는 새로운 시도로 평가받는다.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도 변화했다. 단순한 굿즈 구매를 넘어 체험형 상품, 한정판 아이템, 콜라보 제품 등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특히 해외에서 온 관람객들은 중국에서만 구할 수 있는 독점 상품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는 2차원 문화가 글로벌 소비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중국이 이 분야에서 새로운 공급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문화 수출의 새로운 모델
BW의 성장 궤적은 중국 2차원 문화의 성숙도를 보여준다. 2023년 21만 명에서 시작해 2024년 25만 명, 올해 40만 명으로 참가자가 급증한 것은 단순한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변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성장은 중국의 소프트파워 전략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부 차원에서 문화 콘텐츠 산업 육성에 대한 지원이 확대되면서 민간 기업들의 투자도 활발해졌다. 빌리빌리를 비롯한 플랫폼 기업들은 창작자 지원, 해외 진출, 기술 혁신 등 다방면에서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문화 소비를 넘어 문화 생산과 유통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국제적 관점에서도 BW의 성공은 주목할 만하다. 일본의 코믹마켓과 함께 아시아 2차원 문화를 대표하는 양대 축제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코믹마켓이 동인지 중심의 창작자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BW는 상업적 콘텐츠와 팬 문화가 결합된 종합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으로 차별화된다.
특히 40만 명의 참가자 수는 코믹마켓의 약 55만 명에 근접하는 규모로, 불과 3년 만에 이룬 성과치고는 놀라운 성장세를 보여준다. 이는 중국이 더 이상 문화 콘텐츠의 수입국이 아닌 생산국이자 허브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개발도상국 출신 참가자들이 증가하는 것은 중국 문화의 영향력이 서구와는 다른 방향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행사를 주최한 빌리빌리는 "중국 Z세대의 콘텐츠 창작력과 문화 포용성을 세계에 보여주는 플랫폼"이라며 BW의 의미를 강조했다. 실제로 언어와 문화가 다른 전 세계 젊은이들이 ACGN(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소설)이라는 공통분모로 하나가 되는 모습은 문화의 국경 없는 소통 가능성을 보여줬다. 앞으로 BW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 2차원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중국의 소프트파워가 경제력에 걸맞은 문화 영향력으로 확산되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