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없이 내리는 유성우로 지상에서 더 이상 살아가기 어려워진 세상. 설상가상으로 운석까지 다가와 모두가 대피해야 하는 날까지 왔습니다. 단잠에서 깬 작은 고양이 '셸'도 몸을 피해야 하는 상황인데, 함께 가야 할 엄마가 보이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셸은 엄마가 남긴 쪽지를 따라 지하 깊은 곳의 '에버딥'으로 향합니다.
스페인의 인디 개발사에서 선보이는 <에버딥 오로라>는 땅을 파고 내려간다는 행위에 이야기와 플레이의 초점을 맞춘 플랫포머 게임입니다. 천천히 탐험하며 여러 부가 퀘스트를 진행해도 6시간이면 모든 엔딩에 도달할 수 있어 콘텐츠의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비선형적인 진행 방식과 어느 정도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하는 수수께끼 같은 면으로 플레이 스타일에 따라 즐길 수 있는 시간에는 편차가 있습니다. 모든 도전 과제를 달성하려면 더 오래 플레이 하게 될 수 있고요. /작성=깐(게임 리뷰어), 편집=김승주 기자
에버딥 오로라 (Everdeep Aurora)
출시일: 2025-07-10
개발사: Nautilus Games
유통사: Ysbryd Games
출시 플랫폼: PC, Nintendo Switch
장르명: 어드벤처, 플랫포머
리뷰 플랫폼: PC
리뷰 버전: 사진 리뷰 버전

자고 일어났더니 엄마가 사라졌다!
<에버딥 오로라>의 가장 큰 특징은 드릴로 땅을 파내며 길을 개척하는 게임이란 점입니다. 한 칸의 땅을 뚫는 속도는 드릴 업그레이드를 마쳐도 빠르지 않지만, 시원한 효과음과 컨트롤러의 진동으로 뚫어내는 맛이 꽤 좋습니다.
드릴이 매우 빠르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는 넓지 않은 지역의 범위 안에서 고정된 장소로 향하는 길을 만들어 가는 데 쓰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지역에 어떤 시설이 있을지 표지판이나 NPC의 안내로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한 후 경로를 직접 만들어가는 식이거든요. 바로 직진해서 길을 뚫어도 되지만, 드릴의 동력과 강화에 필요한 광석을 얻을 수 있는 칸을 거치고 오르내리기 쉬운 루트를 짜며 이동할 수도 있습니다.

단델라이언의 입지를 위협하는 '개골라이언'에게 드릴을 얻었다.

목적지를 향해 위아래 할 것 없이 길을 뚫고 나가야 한다.
다행히 실수로 잘못 뚫는다고 해도 문제는 없습니다. 게임을 재실행하거나 설정에서 타일을 복원할 수도 있으니까요. 드릴의 동력은 중간중간 붉은 색의 광석을 소모해 충전할 수 있는데, 바닥이 나더라도 조금 더디게 작동할 뿐 타일을 뚫지 못하는 건 아니어서 스트레스를 주지 않습니다.
타일에 바로 숨겨진 아이템은 없지만 주요 시설 외에도, 부가 퀘스트를 위한 비밀 장소나 코스튬 등의 수집 요소를 얻을 수 있는 상자로 이어지는 길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한 칸 한 칸 파내는 재미가 게임 진행의 동력이 되어 주더라고요.

붉은 광석으로 드릴의 파워를 충전할 수 있지만 소진해도 큰 문제는 없다.
셸이 뚫고 나아가는 지하 곳곳에는 스무 명 가량의 주민이 살고 있습니다. 유성우를 피해 땅 속으로 숨기는 했지만, 지하 깊은 곳에는 끔찍한 괴물이 산다는 흉흉한 소문이 있어 지상과 가까운 곳에 거처를 마련한 거죠.
처음 길을 안내하고 드릴을 주는 등 여러 모로 셸을 도와주는 '개골라이언'처럼 대피에 함께 나선 이들도 있습니다. 개골라이언은 엄마를 찾고 있는 셸처럼 딸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밖에도 지하에 작은 꽃밭을 가꾸고 있는 '애스터'나 낚시터에서 연인 '해다르'를 기다리고 있는 '수다르' 등 세계관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녹아 든 캐릭터들은 셸에게 크고 작은 부탁을 합니다. 몇 가지 배달 퀘스트와 퍼즐 풀이로 다른 주민들을 돕는 것도 에버딥으로 향하며 셸이 해야 하는 일이죠.
구체적이지 않은 중심 이야기와 두서없는 캐릭터들의 사연에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오는 편은 아니지만, 개성 있는 캐릭터들과 그 매력을 잘 살린 번역으로 작은 대화도 소홀히 넘기지 않게 됩니다.

'레뮬러스'는 광석으로 드릴을 강화해 준다.

지하에서 꽃을 가꾸는, 조금 까칠하지만 재주 좋은 녀석도 있고

세월을 낚으며 연애 문제로 골몰하는 수달, '수다르'도 있다.
<에버딥 오로라>는 종방향의 메트로배니아이기도 합니다. 드릴을 강화해 더 단단한 암석을 부술 수 있게 되고, 드릴의 추진력으로 고양이가 본래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높게 뛰어오를 수 있게 되죠. 공중 부양도 할 수 있고요.
하지만 능력을 얻는 과정이 아주 매끄럽지는 않습니다. 일단은 특정 장소를 번갈아가며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주요 목표와 부가 퀘스트에 전부 있는데, 매번의 동선이 그리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저장 지점인 텐트 사이를 빠르게 이동할 수 있기는 하지만 편리하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고요.
왜냐하면 전체 지도 없이 우측의 미니맵으로만 위치와 맵 구조를 확인할 수 있는데, 랜드마크 수준의 핵심 건물 외에는 전혀 표시가 되지 않습니다. 거주민들의 위치나 통로 등 전부 기억에 의존해야 하죠.

저장 지점인 텐트로 빠른 이동을 할 수는 있지만, 지도는 우측에 보이는 미니맵이 전부
또 주요 목표든 부가 퀘스트든 튜토리얼 격 가이드를 제외하면 예언 형태의 힌트만 있어 헤매게 될 가능성이 짙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해결해야 하는 방식이 주는 재미가 있기는 하지만, 진행 포인트로 의심 가는 부분이 많은 상황에서 자칫 막히기라도 하면 어딜 찾아 봐야 할지 선행 조건이 있는 건 아닌지 막연해지더라고요. 퀘스트나 아이템의 중요도를 파악할 수 있다면 도움이 됐을 것인데, 퀘스트 목록도 없고 인벤토리의 정렬도 그저 획득순으로 와다다 쌓이는 식이라 더 혼란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뭘 해야 할지 감이 올 때 의지할 수 있는 건 아쉽게도 수수께끼 뿐이다.
조금 헤매는 상황을 겪더라도 완성도 높은 아트는 언제나 위안을 줍니다. 향수를 자극하는 16비트 스타일의 고전적인 픽셀 아트는 현대적인 고해상도에 맞춰 깔끔하게 출력됩니다.
낮은 채도의 색 조합들은 디스토피아 세계의 분위기를 차분하게 전달하면서도 어린 고양이의 명랑함을 잃지 않고요. 감각적인 색들은 깊이는 물론 구역에 따라 다채롭게 조합이 달라집니다.
특히 캐릭터들마다 색의 구성과 음악이 달라져 조우하는 상황마다 반가움을 더합니다. 음악들은 전부 캐릭터와 상황에 잘 어우러지면서도 중독성이 있고 알맞은 효과음들은 부드럽고도 야무진 애니메이션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마치 눈과 귀가 내내 달콤한 시럽에 절여지는 느낌이랄까요. 소름 끼치게 달지는 않으면서 은은하게 말이죠.



장소에 따라 조합이 달라지는 색들, 만나는 캐릭터와 상황마다 달라지는 음악 등 시청각적 즐거움이 상당하다.
<에버딥 오로라>는 예쁘고 귀여운 것들을 모아 놓은 선물상자 같은 게임입니다. 쾌적한 경험을 위한 레벨 디자인은 아쉽기에 잘 정돈되어 있거나 정교한 게임이라고 보기에는 어렵지만, 우연한 발견에서 얻는 의외성으로 지속적인 즐거움을 줍니다. 메인 이야기의 전개마저 갑작스러운 구석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후반부에 드러나는 비밀과 결말까지 발견하듯 마주하는 데서 오히려 여운을 남기기도 하고요.
조금 투박한 여정일 수는 있지만, 자그마한 세계와 그보다는 큼지막한 미스터리 그리고 전부 담을 수 없을 만큼 귀여운 고양이가 궁금하다면 드릴에 몸을 싣고 그야말로 종횡무진 모험해 보는 건 어떨까요.
에버딥 오로라 (Everdeep Aurora)
7.2
/10
한줄평
투박하지만 사랑스러운 작은 고양이의 땅굴 파기
장점
- 깊은 곳으로 파고내려가는 진행 방식의 독특함
- 색 조합이 예쁘고 애니메이션이 부드러운, 16비트 스타일의 픽셀 아트
- 다양하고 적절하게 쓰인 음악과 효과음
- 매력 있는 캐릭터들과의 조우
- 읽는 재미를 더하는 세심한 번역
단점
- 목표를 파악하기 어려운 가이드 시스템
- 번거롭게 느껴지는 동선과 불친절한 맵
- 후반부에 급작스럽게 전개되는 스토리
김가은(깐) - 게임 리뷰어
폭 넓은 장르의 게임에서 다양한 경험을 찾고자 합니다. 새로운 게임을 찾는 분들에게 제 경험담이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과 영상을 남겨 오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