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많은 사람들에게 이로운 일을 하는 영웅과도 같은 이들을 '언성 히어로(Unsung hero - 무명의 영웅)'라고 부른다.
보편적으로는 스포츠 업계에서 많이 쓰이는 말인데,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는 포지션에서 팀의 승리에 기여하는 선수들에게 이 칭호가 붙는다. 비단 스포츠 업계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맡은 일에 충실하여 사회의 유지 및 발전에 기여하는 이들 또한 '언성 히어로'라 불릴 자격이 충분하다.
게임계에도 이런 '언성 히어로'들이 존재한다. 바로 별다른 대가 없이 유저 한글 패치를 제작하고 배포하는 분들이다. 영어가 서투른 한국 게이머들에게 이들은 빛과 소금 같은 존재다.
별도의 비용 없이 한국어로 편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개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거나 직접 플레이해본 이들이 번역에 참여하기 때문에 한국어 번역의 품질도 어느 정도 보장된다. 영어 실력이 부족해 영어 게임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들에 대한 감사함을 절실히 느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리뷰를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언급하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추리 어드벤처 게임 <루트트리즈 아 데드(The Roottrees Are Dead)>의 유저 한글 패치 제작팀에 대한 감사 인사다.
이 자리를 빌려 <루트트리즈 아 데드>의 한글 패치 제작팀을 꾸린 스트리머 여까님과 게임의 번역 및 검수, 테스트에 참여한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한다. /작성=쿠타르크(인디게임 블로거), 편집=김승주 기자
뿔뿔히 흩어진 루트리즈 가문을 다시 살려야 한다. 루트트리즈 아 데드(The Roottrees Are Dead)
루트트리즈 아 데드(The Roottrees Are Dead)
출시일: 2025-01-15
개발사: 이블 트라우트 Inc.
유통사: 이블 트라우트 Inc.
출시 플랫폼: PC
장르명: 어드벤처
리뷰 플랫폼: PC(스팀)
리뷰 버전: 정식 출시 버전
※ 본 리뷰는 어느 정도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게임 제목에서 암시하듯 루트트리즈 기업의 회장과 가족들이 비행기 사고로 모두 사망했다는 도입부는 플레이어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정보를 수집해 루트트리즈 가문 구성원들의 사진과 이름, 직업을 채워나가는 게임플레이는 <오브라 딘 호의 귀환(Return of the Obra Dinn)>과 유사한 면이 있다.
정식으로 한국어를 지원하지는 않지만, 최근 스트리머 여까님을 중심으로 한 팀에서 유저 한글 패치를 제작해 배포했다. 일반적으로 게임 스트리머들은 이미 한글 패치가 존재하는 게임을 찾아 플레이하거나, 간혹 시청자가 스트리머를 위해 자체적으로 간이 패치를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스트리머가 직접 한글 패치 제작팀을 구성하고 관리한 이번 사례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다행히 한국어 번역의 품질은 일부 인터넷 밈을 활용한 부분이 있음에도 전반적으로 훌륭한 편이다.

한 가족이 비행기 사고로 전부 사망했다. 다른 혈육을 찾기 위해 가계도 복원이 필요한 시점.

1990년대 감수성을 간직한 컴퓨터 화면, 그리고 커피 한 잔이 생각나는 끈적한 재즈 음악이 함께한다.
게임이 진행되면서 도서관이나 간행물 같은 새로운 검색 도구가 추가되고, 각 자료와 가계도의 연관성도 직관적으로 표시된다. 스파이더서치 검색 결과 말미에는 가계도 복원과의 관련성을 암시하는 주석이 달려 있는데, 현실의 인터넷 환경에서는 볼 수 없는 요소라는 점에서 게임적 장치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면 키워드 수집과 검색이 게임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게임의 무대도 작은 방 안의 컴퓨터 화면이 전부다. 조사와 추리를 핵심으로 하는 게임 중에서도 매우 정적인 편이다. 그럼에도 키워드 검색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자료를 발견하고, 확실한 정보를 바탕으로 가계도를 채워가는 과정은 흥미롭다.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루트트리즈 가문의 시작과 변천사, 여러 세대에 걸쳐 각자의 길을 걸어간 가문 구성원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성도, 이름도, 출신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사실은 하나의 가문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자아낸다.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루트트리즈 가문의 시작과 변천사, 여러 세대에 걸쳐 각자의 길을 걸어간 가문 구성원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성도, 이름도, 출신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사실은 하나의 가문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자아낸다.

단순하게 보면 키워드 검색에서 시작해 키워드 검색으로 끝나는 게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가계도 복원 과정에서 드러나는 루트리즈 가문의 이야기는 꽤나 흥미진진하다.
1부에서는 키워드 수집과 검색을 통해 루트트리즈 가문 구성원들의 신원을 파악하는 정보를 수집한다. 나무뿌리처럼 결혼과 이혼, 부모-자식 관계에 따라 세대별로 내려가는 정석적인 구조의 가계도를 완성하는 것이 목표다. <오브라 딘 호의 귀환>처럼 3명의 정체를 완벽히 밝힐 때마다 해당 인물의 사진, 이름, 직업이 확정되고, 인터넷 검색만으로는 찾을 수 없는 자료가 추가로 제공된다.

루트리즈 가문은 이 두 명의 부부에서 시작해서...

이렇게 수많은 자손들로 이어진다. 이들의 정체를 전부 밝히는 건 오롯이 플레이어의 몫이다.
우선 가계도 구조부터 다르다. 복잡한 불륜 관계로 얽힌 이질적인 구조가 눈에 띈다. 루트트리즈 가문이 유명해지면서 가문 일원을 사칭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도입부는 충격적이다. 단순히 인물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을 넘어, 주요 인물들이 진짜 루트트리즈 가문의 일원인지 규명해야 하므로 난이도가 크게 상승한다. 각 인물의 성과 이름을 따로 입력하는 등 시스템상의 변화도 있다.

무려 다섯 갈래로 나뉜 불륜의 흔적. 뭔지는 잘 모르겠어도 벌써부터 어질어질해진다.

분명 같은 가계도 복원 게임인데, 1부와 2부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진다.
검색 엔진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도서관이나 간행물 검색을 병행해야 하고, 때로는 키워드를 응용해 검색해야 한다. 정보를 꼼꼼히 읽고 추론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제한된 정보로 소거법을 활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관찰력, 기억력, 응용력, 그리고 끈기와 인내를 모두 요구하는 게임이다.
이런 난이도 때문인지 '고무 오리'를 통한 힌트 시스템은 매우 친절하다. 단계별로 주목해야 할 정보를 직접 알려주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정답까지 제시한다. 과도한 힌트 사용으로 재미가 반감될 수 있지만, 플레이어가 막히지 않고 스토리를 끝까지 감상할 수 있도록 한 배려로 볼 수 있다.
추가 콘텐츠로 '패밀리도쿠'라는 가계도 맞추기 미니게임이 있다. 제시된 가계도 구조에 맞춰 남녀 이름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명확한 규칙과 적절한 난이도 배분으로 꽤 재미있다. 이 콘텐츠만으로도 별도의 게임을 만들 수 있을 정도다.
가계도를 완성하기 위해 요구되는 게 은근히 많다. 한글 패치가 있다곤 해도 여전히 까다로운 게임이긴 하다.

꽤나 직관적인 디자인의 미니 게임 패밀리도쿠. 이것만 따로 빼서 별도의 게임을 만들었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두 파트로 나뉜 루트트리즈 가문의 이야기는 서로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막장드라마를 연상시키는 자극적인 요소도 담고 있다. 세대를 거듭하며 복잡하게 얽힌 가계도를 키워드 수집과 검색을 통해 양파 껍질 벗기듯 하나씩 밝혀내는 과정이 매력적이다.
양질의 유저 한글 패치가 있지만, 단편소설에 버금가는 텍스트 분량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 정적인 게임인 데다 단순해 보이는 키워드 검색 과정에서도 상당한 꼼꼼함을 요구하므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그럼에도 끈기 있게 진실을 파헤치는 추리 게임을 좋아한다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루트트리즈 아 데드
8.4
/10
한줄평
파편화된 가계도 복원, 비가역을 가역으로 되돌리는 까다로운 과정
장점
- 가계도 복원이라는 독특하면서도 신선한 소재
- 1부와 2부의 극단적인 대비가 돋보이는 준수한 게임성
- 한 가문 전체와 각 일원들 모두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단점
- 취향이 갈릴만한 텍스트 분량, 다소 정적인 게임성
- 관찰력과 암기력, 응용력, 그리고 끈기를 모두 요구하는 까다로운 난이도

- 쿠타르크 (블로거)
2014년부터 11년째 인디게임 리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1,000건이 넘는 게임 리뷰를 작성했다.
